[imazine] 미국 서부 내륙 소도시 기행 ②화려한 듯 소박한 솔트레이크시티

성연재 / 2025-10-02 08: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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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개척정신과 종교가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
▲ 환한 미소로 고객을 맞이하는 트롤리 버스 근무자 [사진/성연재 기자]

▲ 반려견과 함께 다운타운 파머스 마켓을 찾은 시민들 [사진/성연재 기자]

▲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반려견들 [사진/성연재 기자]

▲ 공사중인 템플 스퀘어 [사진/성연재 기자]

▲ 지금은 호텔로 변한 유니온 퍼시픽 철도 역사와 트롤리 버스 [사진/성연재 기자]

▲ 창의적인 일식 요리가 매력적인 에이커 레스토랑 [사진/성연재 기자]

▲ KFC 1호점의 샌더스 대령 동상(왼쪽)과 KFC 메뉴 [사진/성연재 기자]

[imazine] 미국 서부 내륙 소도시 기행 ②화려한 듯 소박한 솔트레이크시티

서부 개척정신과 종교가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

(솔트레이크시티=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미국 서부 내륙 지역 여정의 출발점인 솔트레이크시티는 모르몬교의 본산이자 수많은 영화의 무대로 알려진 도시다. 이곳은 골드러시와 서부 개척 시대를 거치면서 철도 교통의 요충지로 성장했다. 덕분에 종교와 개척정신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도심에는 조용하면서도 품격 있는 카페와 토요 시장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즐비해 그들의 삶을 엿볼 기회가 된다.

◇ 현지인들처럼…반려견과 함께 걷는 토요일 아침

매주 토요일마다 파이오니어 파크에서는 '다운타운 파머스 마켓'이 열린다. 옛 개척 시대 요새 자리에 조성된 이 공원은 6월부터 10월까지 매주 주말마다 신선한 농산물과 수공예품을 사고파는 장터가 된다.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반려견이다. 목줄을 단 채 주인 옆에 얌전히 선 강아지들, 잔디 위에서 서로 냄새를 맡으며 인사하는 모습, 심지어 반려견 간식과 용품을 파는 부스까지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채소와 과일의 향기, 커피와 빵 냄새가 어우러진 공원 안을 주인과 함께 천천히 걷는 반려견들은 이 도시만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산골짜기에서 꿀벌을 치는 스티븐 마운트포드 씨 노점에서 벌꿀 한 통을 샀다. 서부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낡은 전통 모자를 눌러쓴 그의 외모는 이곳의 자연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솔트레이크시티가 '반려견과 더불어 사는 도시'로 불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유타주 전체 가구의 약 36%가 반려견을 키운다고 한다. 미국 수의사회 자료에서도 반려견을 기르는 가구 비율이 2017∼2018년 38%에서 2022년 44.6%로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시장에서 본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한 주민이 막 수확한 토마토를 바구니에 담는 동안, 곁에 앉아 있던 래브라도레트리버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현지인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반려견이 가족처럼 여겨진다"며 "토요일 아침 파머스 마켓은 반려견과 함께 나서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풍경"이라고 말했다.

◇ 너무나 친절한 사람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가장 먼저 다가온 인상은 풍경보다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마주친 이들은 놀라울 만큼 선량했고, 친절했으며, 무엇보다 품위가 느껴졌다. 서부의 많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노숙자들의 모습도 이곳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큰 일교차와 사막성 기후가 장애가 된 탓일까, 도시 전반에는 정갈하고 단정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아침의 도심은 한층 활기가 넘쳤다. 카페마다 간단한 빵과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는 이들이 자리를 채우고, 거리에는 가벼운 복장으로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백인이었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음에도 생활 속에서 풍기는 품격은, 이 도시만의 고유한 '고급스러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바탕에는 모르몬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가 깔려 있다. 모르몬교도들이 종교적 자유를 찾아 황량한 사막을 건너 이곳에 정착했을 때, 그들은 신앙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세우고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갔다. 성실한 노동, 절제된 생활, 강한 공동체 의식은 지금도 도시의 일상과 분위기에 깊이 스며 있다. 도심 한가운데 솟은 모르몬 성전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이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둥처럼 느껴졌다.

◇ 어디선가 본 듯한…관광에 빼놓을 수 없는 것들

솔트레이크시티 언덕길을 오르다 고개를 들었을 때, 잠시 워싱턴D.C.에 온 줄 알았다. 흰 돔과 코린트식 기둥, 양쪽으로 뻗은 현관…유타주 의사당은 미국 연방 의사당과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이 판박이 같은 외형은 영화·드라마 제작진에게는 보물 같은 세트 그 자체였다.

실제로 수많은 영화 촬영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언덕에서 내려와 도심으로 걸음을 옮기면 솔트레이크시티를 가장 '연극적으로' 둘러볼 방법이 기다린다. 빈티지 형태의 트롤리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가이드들은 개척 시대 인물로 빙의해 노래와 대사로 도시 역사를 풀어낸다. 말 그대로 '쇼-투어'다.

예약 장소는 래디슨 호텔 앞, 자리가 금세 차니 미리 예매하라는 안내가 따라붙는다.

여행자들의 후기는 대체로 '연기와 해설이 절묘하게 섞였다'는 식의 호평 일색이지만 가끔 말이 너무 빨라져 영어 듣기시험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 과장된 연출이 호불호를 타긴 해도, 도시의 기본기를 빠르게 익히기엔 더없이 효율적이라는 평이다.

트롤리 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주 의사당 돔과 과거 유니온 퍼시픽 철도의 역사 건물을 보면 이곳이 왜 '서부의 교차로'였는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 빼놓을 수 없는 솔트레이크시티의 미식

솔트레이크시티의 미식은 소박하면서도 창의적인 매력이 돋보인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삶을 이어온 이들의 지혜가 음식에 담겨 있었고, 아침의 바삭한 크루아상부터 저녁의 파스타, 채소 요리, 세비체, 세련된 정찬까지 재료와 조리법은 달라도 모두 진정성이 전해졌다.

아침에는 에바스 베이커리에서 막 구운 크루아상과 진한 커피를 즐겼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녹아내리는 크루아상은 버터 향이 고소하면서도 과하지 않았고, 산미가 살아 있는 커피가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저녁은 마테오 레스토랑에서 파스타와 오징어튀김을 곁들였다. 면발은 탱글탱글했고, 오징어튀김은 한국에서 맛보던 익숙한 풍미와 닮아 있었다. 여기에 톡 쏘는 지역산 IPA 맥주가 청량함을 더했다.

창의적 요리가 빛났던 HSL에서는 비트 샐러드가 강렬한 색감과 은은한 단맛으로 인상적이었다. 라임을 곁들인 쌀 디저트는 담백함과 상큼함을 동시에 전하며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친절한 인상이 남은 에이커 레스토랑에서는 캘리포니아롤과 세비체가 돋보였다. 특히 라임의 신선함이 살아 있는 세비체와 매운맛이 더해진 참치회는 독특한 조화를 이뤘다. 한국계 매니저 알라나 보리유의 따뜻한 환대도 잊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어반 힐에서는 모던한 공간에서 지역산 재료를 살린 요리가 이어졌다. 샐러드는 재료 본연의 풍미가 살아 있었고, 주요리의 고기는 육즙이 풍부해 담백한 소스와 잘 어울렸다. 절제된 플레이팅은 음식의 깔끔함을 더 강조했다.

◇ KFC 1호점

솔트레이크시티의 미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또 하나 있다. 솔트레이크시티에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 KFC의 1호점이 있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라는 이름 때문에 당연히 켄터키주에서 시작됐을 것 같지만, 첫 체인점은 이곳에서 문을 열었다. 사연 뒤에는 65살에 창업에 도전한 할랜드 샌더스 대령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솔트레이크시티 외곽의 1호점은 파란 하늘 아래 빨강·흰색이 어우러진 간판과 치킨 컵 구조물, 그리고 샌더스 대령 동상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관광객들은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매장 내부에 전시된 창업자의 흑백 사진과 도전기를 보며 감탄을 쏟아낸다.

1930년대 켄터키주 코빈에서 주유소 옆 식당을 운영하던 샌더스 대령은 독창적인 치킨 레시피를 완성했지만, 체인점 개설을 위해 전국을 떠돌며 무려 1천9번이나 거절을 당했다. 그러나 끝내 포기하지 않고 두드린 1천10번째 문, 솔트레이크시티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의 치킨은 인정받았다. 이곳에서 세계 최초의 KFC 체인점이 탄생했다.

지금, 이 매장에서 치킨을 맛보면 단순한 바삭함을 넘어, 철도와 서부 개척의 도시가 품은 개방성과 샌더스 대령의 집념이 함께 전해지는 듯하다. 솔트레이크시티의 KFC 1호점은 결국 '포기의 문턱을 넘어선 용기'를 기념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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