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사라졌다' 감독 "무언가 잘못된 현대사회에 대한 진단"

강애란 / 2021-10-03 0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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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감독 [모쿠슈라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 [모쿠슈라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 [모쿠슈라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첫눈이 사라졌다' 감독 "무언가 잘못된 현대사회에 대한 진단"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지친 영혼을 치유할 방법이 있을까. '하나, 둘, 셋' 주문과 함께 마음속 슬픔과 갈망을 덜어주는 신비로운 최면술사가 한 마을에 나타났다.

판타지 요소를 품은 영화 '첫눈이 사라졌다'는 영혼을 깨우는 최면술사 제니아의 등장으로 폴란드 바르샤바의 부유한 마을 전체가 들썩이는 독특한 이야기다. 특별한 줄거리 없이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나열하듯 쭉 보여준다.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 감독은 최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현대 사회에서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일종의 진단을 내리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제니아가 방문한 마을의 사람들은 겉보기에 걱정거리가 하나도 없을 것 같지만 저마다 마음의 짐을 갖고 있다. 알코올 중독인 듯 시도 때도 없이 술을 마시며 누적된 피로를 호소하기도 하고, 공허한 듯 제니아에게 성적인 욕구를 분출하는 이도 있다. 암에 걸려 기적 같은 치료법을 갈구하기도 한다.

"저는 현대 사회의 여러 국가가 문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신적인 것에 대한 논의는 더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만 바라고, 죽음을 두려워하죠. 어떻게 하면 더 물질적으로 부유해질 수 있을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고민해요. 우리 사회에서 더는 정신적, 영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없게 된 것 같아요."

정신이 피폐한 마을 사람과 달리 제니아는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 역시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체르노빌 출신인 그는 공중에 떠다니는 방사능 먼지가 마치 눈 같다며 좋아하던 어린 시절과 병상에 있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슈모프스카 감독은 "제니아 역시 마을 사람들과 똑같은 고통을 갖고 있다. 그 안에는 외로움이 있는데, 이것은 공허함과는 다르다"라며 "정신적인 관점에서 그는 물질주의에 집어삼켜진 다른 사람들보다 낫지만, 유년 시절과 엄마를 그리워한다. 이런 외로움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모든 이들이 겪는 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니아를 수수께끼 같은 모호한 인물로 느껴지게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끌고 가는데 제니아 역시 어떤 인물인지 쉽게 정의되지 않는다.

"제니아는 흑과 백, 선과 악, 인간과 신 그 가운데에 존재하는 매우 설명하기 힘든 캐릭터예요. 일종의 실험이었죠. 비논리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관객이나 배우에게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에서는 모든 것이 명쾌하게 설명되거나 딱 떨어지지 않아요. 무언가 숨겨져 있고 또 불가사의하죠."

수수께끼 같은 작품의 제목은 기후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니아와 같이 체르노빌 출신으로 원전 사고 당시 7살이었던 슈모프스카 감독은 그날 하늘에서 검은 구름을 봤다고 했다. 이후 체르노빌은 버려졌지만, 야생 동물, 식물들이 그곳을 장악하면서 망가진 장소가 다시 자연으로 채워졌다. 이런 체르노빌 상황에 더해 영화 편집을 할 때 한 꼬마가 "앞으로 눈이 오지 않을 거야"라고 외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제목에 반영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슈모프스카 감독은 끝으로 "미스터리하고 수수께끼 같은 작품이지만, 관객들에게 놀라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화는 오는 20일 개봉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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