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굿] ⑤살아있는 신앙, 박제화된 문화재 갈림길(끝)

변지철 / 2022-01-31 09: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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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퍼진 뿌리 깊은 편견, 신앙민·전승자에 상처
"굿, 신앙민 속에 더 자율적·역동적으로 전승돼야"
▲ 산신님께 새해 인사 올립니다 (제주=연합뉴스) 2014년 2월 13일 제주시 조천읍 와흘본향당에서 이 마을 주민들의 생산, 물고, 호적 등을 관장하는 당신(산신)에게 새해 인사를 올리는 신과세제가 열렸다. 수령 400년이 넘은 팽나무 2그루가 있는 이 당은 지난 2005년 제주도 민속자료 제9-3호로 지정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제주 해녀 무사안녕을 기원합니다 (제주=연합뉴스) 지난 2013년 10월 13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제주해녀박물관 일원에서 열린 '제6회 제주해녀축제'의 하나로 풍어와 해녀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해녀 굿이 끝나고 제상에 올렸던 음식을 한지에 싸서 바다에 던지는 지드림 의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칠머리당영등굿 보는 초등학생들 (제주=연합뉴스) 지난 1999년 3월 제주시 건입동에서 제주동초등학교 학생들이 김윤수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이 시연하는 칠머리당영등굿을 지켜보고 있다. 2022.1.31 [강정효 전 제주 민예총 이사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탐라문화제 '제주 큰굿' 시연 (제주=연합뉴스) 지난 2014년 10월 5일 '문화왕국 탐라, 신명을 펼치자'라는 구호를 내건 제53회 탐라문화제 당시 제주시 탑동광장에서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주 큰굿'이 시연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제주 4.3 행방불명인 진혼굿 (제주=연합뉴스) 지난 2008년 4월 1일 제주 4.3 60주년을 맞아 제주시 옛 주정공장터에서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주최하는 행방불명인 진혼굿이 열린 가운데 4·3 희생자 유족들이 영령들을 위해 지전을 올려놓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의 굿] ⑤살아있는 신앙, 박제화된 문화재 갈림길(끝)

사회에 퍼진 뿌리 깊은 편견, 신앙민·전승자에 상처

"굿, 신앙민 속에 더 자율적·역동적으로 전승돼야"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조선 시대에서부터 오랫동안 이어진 탄압과 급속한 산업화 속에 '굿'으로 대표되는 제주의 전통신앙은 큰 타격을 받았다.

사실상 명맥만 이어지고 있을 뿐 과거와 같은 종교적인 영향력을 잃은 지 오래다.

미신이라 터부시됐던 것들이 '민속 문화'로서 존중받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편견에 부딪혀 사람들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거스르기 힘든 현상 중 하나다.

전통문화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고민이 깊어진다.

◇ 무속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미신, 미친 짓."

지난해 12월 22일 제주큰굿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승격됐다는 언론보도에 달린 댓글이었다.

해당 댓글은 현재 사라졌지만, 신앙민을 비롯한 제주큰굿보존회 회원 등 당사자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문화재로 인정받았음에도 무속에 대한 대중의 편견은 뿌리 깊게 작용하고 있다.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도 현재 '무속 논란'이 이어지고 있을 정도다.

'굿'으로 대표되는 제주의 전통신앙은 사람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과거 제주에는 돼지를 잡아서 신에게 바치는 '돗제'(豚祭)가 해마다 열렸다.

제의식을 마무리한 뒤에는 돼지고기로 죽을 쑤고, 고기 일부를 마을 사람들이 함께 골고루 나눠 먹었다고 한다.

돼지고기 한 점 먹기 힘들었던 그 옛날 신당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졌을 것이다.

제주에는 지금까지 이러한 마을제를 통해 마을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제주 해녀들은 새해가 되면 무사고와 풍어를 기원하는 잠수굿을 한다.

바닷가 신당에 제물을 올리고, 두 손을 모아 간절한 바람을 전한다.

그리고 출렁거리는 험한 바다에서 먼저 죽어간 동료들을 위무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된 삶을 이어가는 해녀들의 이러한 의식을 감히 미신이라고 평가절하할 수 있을까.

현대인의 시각에선 미신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믿음에 의지해 해녀는 80세 넘어서까지도 그 힘든 삶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흐릿해져 가고 있다.

연합뉴스는 지난해 3월 제주지역 초등학교 4∼6학년 학생 550명을 대상으로 제주의 굿과 신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굿'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85.4%가 굿을 '본 적 없다'고 답했고, 84.0%가 제주 입춘굿 축제, 영등신 축제를 본 적 없다고 답했다.

초등학생 63.9%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굿을 통해 전승되는 제주신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사실상 일상생활 속에서 제주의 세시풍속을 익히는 과정이 단절돼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주큰굿보존회 회장인 서순실 심방은 "굿도 우리의 전통문화라는 인식을 했으면 한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우선 학교에 찾아가 굿 속에 전해오는 다양한 본풀이(제주신화)를 옛날이야기 식으로 아이들에게 맞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말했다.

또 "1년에 한 번이라도 (제주지역) 학생들이 때마다 고향 마을에서 하는 신당을 찾아 마을제를 보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정착하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지만 자율·역동성 잃어"

제주의 굿은 전통신앙으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별개로 문화의 영역에서 문화재로서 인정받았다.

제주 칠머리당영등굿, 제주큰굿, 송당리 마을제 등 일부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국가무형문화재, 제주도무형문화재 등에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제주 해녀들이 조업 중 무사고와 풍요를 기원하며 행하는 잠수굿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제주 해녀문화(Culture of Jeju Haenyeo)의 범주에 포함됐다.

하지만 국가와 제주도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승 여건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관(官)의 보호 체계 안에서 행정적 효율성을 따지는 탓에 과거 마을 단위 공동체 속에서 엿보이던 독립성과 역동적인 자유로움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영등굿이 제주 전역에서 행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시 건입동 본향당인 '칠머리당영등굿'만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 탓에 도내 다른 지역의 영등굿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지적도 반복해서 제기돼왔다.

제주큰굿의 경우 오늘날 여러 가지 제약이 뒤따른다.

신앙민이 개인 집에서 심방을 청해 벌이는 가장 큰 규모의 굿이란 특성상 현대식 주거환경 속에서 일주일에서 보름 가까이 이어지는 큰굿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개인의 의뢰로 이뤄지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큰굿을 직접 접할 기회도 극히 드물다.

단지 탐라문화제와 같은 행사장에서 이뤄지는 시연만 접할 수 있을 뿐이며, 이마저도 30분에서 1시간가량 큰굿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 때문에 시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고 큰굿을 벌일 수 있는 상설 공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엇보다도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전통 제주의 굿을 할 수 있는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의 무속신앙을 연구하는 강소전 박사에 따르면 현재 제주도 심방 현황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다.

1980년대 이뤄진 초창기 무속연구에서는 대략 400명 가까운 심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무속을 천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녹록지 않은 수련 과정으로 인해 심방이 크게 줄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관련 보유단체로 인정받은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와 '제주큰굿보존회'에서 실질적 활동을 벌이는 심방 회원 수는 둘 다 각각 10명 안팎에 그친다.

일정 수준의 역량을 갖춘 심방은 현재 제주도 내 수십 명 정도에 그칠 것이란 추측만 할 뿐이다.

심방이 없어서 또 신앙민이 없어서 제주의 굿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제 제주의 굿은 '박제화된 문화재'로 남느냐 또는 '살아있는 신앙'으로서 명맥을 이어가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강소전 박사는 "아직은 제주의 굿이 '박제화됐다'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해 신앙민이 줄고 영향력이 약화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앞으로 전승 위기 상황에까지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앙민의 존재와 함께 전승 교육을 통한 심방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문화재 지정에 따른 장단점이 분명히 있다. '굿'이 신앙민들에 의해 자율적이고 역동적인 면모를 띠면서 건강하게 전승되도록 보다 세심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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