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옆 이건희 기증관, 광화문 박물관 단지 화룡점정 될까

박상현 / 2021-11-14 10:37:25
  • facebookfacebook
  • twittertwitter
  • kakaokakao
  • pinterestpinterest
  • navernaver
  • bandband
  • -
  • +
  • print
2000년대부터 서대문∼안국역에 박물관 잇따라 개관…"우연의 소산"
"이건희 기증관은 동서고금 미술 아우르는 새로운 공간 돼야"
▲ '이건희 기증관' 건립 부지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0일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 옥상에서 바라본 가칭 '이건희 기증관' 송현동 건립 부지. 2021.11.10 [공동취재] hama@yna.co.kr

▲ 국군기무사령부 자리에 세워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그래픽] '이건희 기증관' 송현동 건립 확정 (서울=연합뉴스) 김토일 기자 =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가 송현동 48-9번지 일대 3만7천141.6㎡ 중 일부(9,787㎡)를 기증관 건립 부지로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kmtoil@yna.co.kr

경복궁 옆 이건희 기증관, 광화문 박물관 단지 화룡점정 될까

2000년대부터 서대문∼안국역에 박물관 잇따라 개관…"우연의 소산"

"이건희 기증관은 동서고금 미술 아우르는 새로운 공간 돼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이 정부에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천여 점을 보존하고 전시할 이른바 '이건희 기증관' 위치가 종로구 송현동으로 낙점되면서 광화문 일대는 '박물관 단지'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됐다.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설 자리는 경복궁 동쪽에 있으며,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서 도보로 5분이면 닿는다. 기증관 부지 동쪽에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난 7월 옛 풍문여고 자리에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이 위치한다.

문화재계와 미술계는 사실상 20년 넘게 방치됐던 송현동 부지에 새로운 박물관을 짓는 방안에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건희 기증관이 광화문 박물관 단지의 '화룡점정'이 되려면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광화문 일대, 정부·학교 이전하며 박물관 늘어

'박물관 단지'는 말 그대로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여 있는 공간을 뜻한다. 국내에서는 세종시가 국립박물관 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박물관 단지가 있는 외국 도시로는 미국 수도 워싱턴과 독일 베를린이 유명하다. 워싱턴에는 스미스소니언협회가 운영하는 박물관이 밀집해 있고, 베를린에는 '박물관 섬'이 존재한다.

서울 도심 광화문 주변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외에는 대형 박물관이 없었다.

그러다 2000년대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으로 이전했으나, 다양한 박물관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서울시는 조선시대 궁궐 중 하나인 경희궁 터에 건물을 짓고 2002년 5월 '서울역사박물관'을 열었다.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 문화를 연구하는 국립고궁박물관은 2005년 8월 경복궁 서남쪽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 개관했다. 고궁박물관 전신인 궁중유물전시관은 덕수궁 석조전에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현대사를 다루는 국립박물관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미국대사관 옆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를 보수해 2012년 12월 문을 열었고, 옛 국군기무사령부 부지에 지어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2013년 11월부터 관람객을 맞았다.

지난해 11월에는 경희궁 서쪽 서울기상관측소 건물을 활용한 국립기상박물관이 개관했다. 국보로 지정된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와 보물인 '관상감 측우대'가 기상박물관 소장품이다.

국립기상박물관 인근에는 농협이 2005년 신축 개관한 농업박물관이 있고, 이건희 기증관과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우정국로를 따라 남쪽으로 200m 정도 걸으면 대한불교조계종이 2007년 설립한 불교중앙박물관이 보인다.

이처럼 지하철 서대문역에서 광화문역, 광화문을 지나 안국역까지 이동하다 보면 다양한 국·공·사립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북촌과 인사동에도 작은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광화문 일대는 '박물관 단지'로 손색이 없는 공간이 됐다.

박물관 역사를 연구하는 한 학자는 "박물관 단지는 본래 근대 국민국가의 위용을 드러내는 곳이었는데, 우리는 후발 주자로서 뒤늦게 박물관 단지를 체험하고 있다고 본다"며 "박물관 단지가 있으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쉽게 박물관을 찾는 집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 박물관 단지가 대부분 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면 광화문 일대는 개별 박물관이 증가하면서 이뤄진 우연의 소산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건희 기증관, 박물관·미술관 통합 '실험적 장소' 돼야

문체부 소속 독립기관으로 운영될 이건희 기증관은 소장품 구성으로만 보면 국내에서 유례가 없는 국립박물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건희 컬렉션은 문화재 2만1천693점과 근현대 미술 작품 1천488점으로 나뉜다. 문화재 중에는 국보와 보물도 있지만, 민화나 목기 등 민속 유물도 상당수 존재한다. 미술품 가운데는 외국 작가 작품도 119점이나 있다.

우리나라는 고고학·역사학 관련 자료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박물관과 근현대 미술을 다루는 미술관이 분리돼 상호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이러한 사실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과 전시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건희 기증관은 태생적으로 동서고금 미술을 아우르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학계 관계자는 "과거에 최순우 선생을 보면 전통미술을 하는 분이 현대미술 평론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두 분야 사이에 왕래조차 사라진 듯하다"며 "이건희 기증관은 세계의 보편적 미술 속에서 한국 미술을 조명하고, 전통 미술과 현대 미술을 연속성 있게 보여주는 실험적 장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희 기증관 설립을 계기로 광화문 일대 박물관들이 사안에 따라 유기적으로 협조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례가 서울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이 다음 달까지 각각 개막하기로 한 '광화문' 특별전이다. 세 박물관은 저마다 다른 주제를 선정해 광화문 일대 역사와 공간을 탐색하는 전시를 열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건희 기증관이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박물관이 된다면 주변 박물관, 미술관과 연구·전시·교육 측면에서 교류할 여지가 클 것으로 전망했다.

(끝)

(C) Yonhap News Agenc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