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시중(時中)

고형규 / 2024-12-09 0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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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여신상(변호사회관) [촬영 안 철 수] (연합뉴스 DB)

[이런말저런글] 시중(時中)

이편저편이 갈립니다. 그렇지 않을 땐 없습니다. 참여와 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대의민주정의 일상입니다. A는 말합니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닙니다. 중립(中立)입니다". 가운데(中) 서(立) 있으니까 중립이라는 겁니다. 이 말, 그럴싸한가요? 뭔가 개운치가 않습니다. 오십보나 백보나 하며 늘 "그런 건 모르겠고 난 무조건 중립이야" 할 것 같으니까요. 오십보 차는 엄청난 것인데도 말이에요.

B는 또 그럽니다. "나는 진영 논리가 싫습니다. 어느 진영의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한데, 석연치 않은 것은 이쪽도 비슷합니다. 1 더하기 1은 2라는 자명(自明.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알 만큼 명백하다!)한 이치도 진영 논리라며 부정할 것 같으니 말이에요.

시인 조지훈의 시중(時中. 때 시 가운데 중)론을 잠시 빌려옵니다. 같은 무게를 양쪽에 놓고 저울대의 한중간을 들어 균형을 잡는 중용이란 '관념'상의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 장소의 그 비중을 봐서 중(中)을 잡으려면 중용지도는 시중일 수밖에 없다면서요. [그 당시의 사정에 알맞음. 또는 그런 요구]라는 사전의 풀이야말로 무엇이 '현실'임을 알려줍니다. '만물이 그 처한 상황에 따라 합당함을 얻는 것'이라는 구글 인공지능(AI)의 설명도 경청합니다. 물론 세상의 부조리는 시중의 부재를 강제하기도 합니다. 그 또한 어쩔 수는 없겠습니다.

그렇다고 오십보 백보의 길이를 잴 자와 자명한 이치는 무엇일까 따지는 일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이에 관한 합의가 있긴 있는 것일지…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많습니다. 헌정체제의 기본원리와 헌법 조항 몇 개만 봐도 드러납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 인권, 법치(rule of law) 등등. 지난한 민주화가 집약한 대한민국 헌법은 소중합니다. 한계야 있겠으나 조문 하나하나에 피땀눈물이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조지훈 전집 편집본 『지조론』중 '어떤 길이 바른 길인가'(원문 기고, 1963년 3월 사상계)

2. 대한민국 헌법 - https://www.law.go.kr/lsEfInfoP.do?lsiSeq=61603#

3. 구글 AI '時中 개념 뜻' - https://www.google.com/search?q=時中+개념+뜻&oq=時中+개념+뜻&gs_lcrp=EgZjaHJvbWUyBggAEEUYOTIKCAEQABiABBiiBDIKCAIQABiABBiiBDIKCAMQABiABBiiBDIKCAQQABiABBiiBNIBCDkxNzBqMGo0qAIAsAIB&sourceid=chrome&ie=UTF-8

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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