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입장(立場), 너만 잘났냐

고형규 / 2024-12-24 05: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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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의 속 표지 (조선어사전, 한글학회 큰사전) '근현대 국어사전' 누리집에 나와 있는 사진 [국립국어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말저런글] 입장(立場), 너만 잘났냐

입장(立場)이 난무합니다. 너무 현란하여 어질어질합니다. 일상 말글에서도 정도가 심합니다. 어디든 아무 때나 나타납니다. 더 나은 낱말로 바꾸고 싶습니다. 훨씬 매끄러워지리라 확신합니다.

국어 전문가 이병철의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는 [입장]이 일제 침략 이전에는 없던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일본 한자어이기 때문입니다.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たちば(다치바)로 나옵니다. 1번 뜻은 설 곳, 2번은 입장, 3번은 관점입니다.

힌트가 이미 보입니다. [입장]만 고집할 게 아닙니다. 문맥에 따라 다른 단어를 쓰면 말맛도 글맛도 더 좋아집니다. 단순한 기사문은 예외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뜻을 더 살리려면 최적의 단어를 골라보는 게 바람직합니다. 단조로움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므로 필요한 작업입니다.

[이날 입장 표명에는 A, B, C가 함께했다]를 [이날 성명(서) 발표에는 A, B, C가 함께했다]로 고쳐 씁니다. 현실에 더 들어맞는 표현이며 읽히기도 잘 읽힙니다. [그는 a가 b보다 괜찮은 선택이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보다 [그는 a가 b보다 괜찮은 선택이라는 견해(생각, 판단, 의견, 관점)를 여러 차례 밝혔다]가 괜찮은 선택입니다.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도 다양한 예문을 들어 이해를 돕습니다. [자네 입장이 무엇이든 간에]는 [자네 속셈이 무엇이든 간에]로 바꿔씁니다. [검찰은 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서]는 [검찰은 이에 대한 태도를 정리해서]로 교열했습니다. [투쟁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는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로 고쳤습니다. 저자가 언론사에서 일할 때 손본 문장들입니다. 대체어로 '처지'가 쓰인 예는 없습니다. 견해, 계획, 관점, 노선, 방침, 속셈, 생각, 의지, 주장, 처지, 태도, 형편 등등. 이영차! [입장] 자리에 이들이 대신 앉을 기회를 골고루 줘봅시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이병철,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 천년의상상, 2021 (제공:서울도서관 전자도서관)

2. 네이버 일본어사전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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